밤에 찾은 동해바다.
오후 늦은 시각에
동쪽 바다가 보고싶어 길을 잡았다.
혹시 해지기전에 도착하면 훤한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속도를 내며 달렸다.
120...140...160...내리막길에 170...
속도계바늘이 가늘게 떨고 있었다.
대관령근처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먼 산에 남아있는 백설.
얕으막한 산은 응달진곳에 하얀 옥양목을 쫘악 펼쳐놓은 듯
길게 남아있고, 멀고 높은산은 전체가 희끗희끗 했다.
적어도 그곳은 아직 봄 얘기와는 거리가 멀게보였다.
좁은 국토지만 위치에 따라 확연히 달리보이는 계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그와같다 하겠다.
어떤 사람은 화사한 봄을 만끽하고 또 어떤사람은
아직 한 겨울의 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가끔씩 나타나 브레이크를 밟게하는 무인카메라...
마치 전장의 게릴라처럼 불쑥불쑥 한방씩 쏘아대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지점에서 몇발의 탄환을 맞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 듯 달리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이미 밝은해는 자취를 감추고 깜깜한 어둠이 계엄군처럼 버티고 있었다.
요리조리 길을찾아 몇 십 분을 더 달려서야 비릿한 바다내음의 영접을받아
그 장엄한 동해바다와 마주할 수 있었다.
검푸른 무한 어둠 뒤에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쏴~아 달려오는 파도.
한 켠에 켜켜히 쌓아둔 온갖 걱정,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찢겨진 아픈상처와 서운함...
이런 저런 모든것을 죄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출렁이는 바다는 충분히 깨끗하게 씻어줄 것만 같았다.
시간에 쫓겨 겨우 찾은 밤바다.
그는 마치 손님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는 양
어수선한 바람도 잠잠히 재워놓고
조용조용 타이르 듯 내 가슴을 씻어준다.
쏴르르 쏴~아~
백사장 촘촘한 모래 틈새로 온갖 시름 모두 걸러준다.
오늘 아침 사무실 책상위에
짠 내음이 베어있는 모래 한 줌이
맥스웰하우스 종이컵에 조개껍질 세개와 담겨져
내 표정 하나하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