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성 나들이.
'공북루' 를 걸어들어간 날은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상태라 등줄기에 금새 땀이 맺혔다.
고창이 고향이면서도 성안을 주밀하게 살펴볼 기회를 갖지 못했는데
고모부 상을당해 내려왔다가 좀 지루(?)한 시간을 활용할겸 찾게 된곳이 '모양성'이다.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구해보니
조선 초기의 석축 읍성. 둘레 1,684m. 사적 제145호
모양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고창 지역이 백제 때 毛良夫里로 불리었던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동쪽으로 진산인 반등산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북의 세문과 치 여섯군데, 수구문 두 군데, 옹성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라고 되어있다.
이 읍성이 언제 축조되었는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고, 『고창읍지』나 『동국여지승람』에 단순히 둘레가 3,008척, 높이가 12척이고 성내에 三池四泉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숙종 때 이항이 주민의 힘을 빌려 8년 만에 완성시켰다는 설도 있고, 1453년에 축조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성벽의 濟州始·和順始·羅州始·癸酉所築宋芝政이라는 각명으로 미루어볼 때 계유년이 어느 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벽의 축성법으로 보아 1573년으로 추측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홍예문과 초루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이 있어 이것은 서울의 돈화문·홍화문 또는 평양의 고구려시대의 성문,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강화읍성 등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는 것으로, 성곽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안으로 들어서니 울창한 숲 그늘아래서 담소를 나누는 피서객이 눈에띈다.
수백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소나무, 떡갈나무, 이름모를 고목들이 즐비하다.
특히 짙은 솔향을 쉼없이 내뿜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한다.
고창에 이렇게 유서깊은 명소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조금 더 들어가니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터가 보인다.
정말 약처럼 조금씩 흘러나온다.
그러나 맑고 깨끗해 보여 한바가지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니
온 몸의 땀이 화들짝 놀라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동남쪽으로 조금더 깊숙히 들어가니 발길 닿는 곳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상처 하나 없이 맘껏 잘 빠진 몸매를
앞다퉈 자랑이라도 하듯 줄지어 서있는 소나무.
나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눈 뜨고 있었기에 오히려 그들이 이쪽을 귀엽게(?)봐주는 것일까...
성벽에 갇혀 있으면서도 불평하나 없이 그 벽과 주고받은 수많은 밀어를 내 어찌 짐작이나 할까나...
소슬하게 다가와 바깥쪽 성벽 소식을 전해주는 바람과 안쪽 소나무 숲 안부를 전하는 날다람쥐의 쪽지...
수백년을 이어온 숲과 성벽의 완벽한 조화... 그들은 그렇게 오롯이 살아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성을 만들었고 성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함께했던 옛 사람들이
걷고 있는 내내 부럽다는 생각에 시간을 거슬러 그들의 틈에 끼어들고 싶었다.
이곳은 성 뒷쪽 저수지다.
저수지 이름은 모르겠으나 모양성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란 생각이다.
성 주변을 손질하고 잘 가꾸어 관광지로 만들어 널리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너무 현대적 이미지로 손질 하는 것은 삼갔으면 좋겠다.
다음 기회에 좀더 세밀하게 구석구석 돌아보야겠다.
아름다운 별천지를 맛보기로 찔끔 보고온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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