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 문턱이면 그리운 것..

귀촌 2008. 8. 25. 11:32



온난화로 여름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가을자리를 많이 침범하지만 아직 분명한 구분은 있다.

 

요 몇일 아침 저녁 공기는 제법 차가워지고 하늘은 높아보인다.

어린시절 대가족이 모여살던 시골집에

추석을 앞둔 싯점이 되면 집안 이곳 저곳을 깔끔히 정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 하나가 할머니께서 한지로 문 바르던 일이다.

 

하늘이 높아지고 맑은 바람이 대숲 사이를 사쁜사쁜 지나는 날

집안의 문은 죄다 마루 한켠으로 나들이를 한다.

골방 문은 거미줄이 걸쳐있고 부엌문은 꺼멓게 그을려 있다.

출입이 잦은 앞문은 누렇게 손때가 묻어있고 군데군데 바람구멍도 있다.

 

할머니는 풀을 쑤고 나는 누나들과 문짝들을 비질하여 먼지를 털고

걸레에 물을 적셔 문종이를 문지른다.

손으로 그냥 찢겨내는 동안은 힘든줄 모르는데 나무 틈새 하나하나 물을 적셔가며

종잇조각을 꼼꼼히 떼어내는 일은 꾀 힘든 일이다.

 

여러개의 문은 제 위치에서 쓰임새 별로 각각 특징적인 옷을 입는다.

제일 바쁜 앞문은 앉은자세의 눈높이에 작은 유리창이 들어가고

손잡이 근처는 댓잎을 보기좋게 바른후 이중으로 한지를 붙여 잘 찢어지지 않게 한다.

부엌문은 여닫는 손잡이 근처에 잘 말린 쑥을 곱게 펴서 붙여넣는데 마치 꽃잎같다.

쑥을 붙이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매년 똑같은 방법으로 그리하셨다.

 

그늘에 말려 해질무렵 아버지께서 문을 달면 그 상태로 문풍지가 발라지고

집안은 훨씬 환해진다.

출입문들은 눈이 시릴만큼 하얗게 주름하나 없이 팽팽해진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새옷을 기다리는 동심과 새단장한 모습을 보여주고픈 문은 그렇게 추석날을 함께 기다린다.

 

'명절날 조상님 뵐려면 깨끗히 해야지...'

문 바르면서 하시던 할머니 말씀이 해마다 이맘때면 왜 이리 그리워지는지...

높은 하늘에 바람 서늘해지면 눈가에 이슬방울 맺힌 채

한폭의 수채화 속으로

할머니 만나러 빠져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