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와 교통사고
초가을 이라 하지만 한낮의 열기는 한여름 못지 않았다.
튀어오르는 햇빛 사이를 비집고 질주하는 차들은
고속도로를 인정사정없이 짓누르며 지나고 있었다.
추석 연휴도 짧고 여러여건이 고르지못해
미리 벌초겸 성묘를 할 요량으로 일주일 먼저 고향길을 잡은 것이다.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쉽게 내려가지 못하기에
마음은 명절날 내려가는 것이나 진배없이 들뜨고 즐거웠다.
해마다 벌초는 아버님이 하셨기에 성묘길에 보는 묘지는
일년내내 짧은 머리로 단정한줄만 알았다.
그러니까 벌초하는 수고로움이 어떤것인지 몰랐다는게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집에있는 예초기와 동네에서 빌린 예초기를 합해 3대의 기계가 작동되었다.
칼날은 마치 헬리꼽터 꼬리날개마냥 둥그런 원을 그리며 힘차게 도는데
어쩌다 돌맹이라도 건드리면 불꽃이 튀고 귀를 찢는 굉음이 소름을 돋게한다.
봉분과 벌안의 잡풀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질겼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기계로 슬렁슬렁 진도만 나가니 마치
옛날 이발기계(일명 바리깡)로 어설프게 밀어놓은 머리마냥 보기에 흉하다.
보다못한 아버님이 예초기 하나를 빼앗아(?) 풀을 베기 시작하는데
마치 질서 정연하게 넘어지는 도미노처럼 풀잎은 가지런히 눕는다.
풀들은 사정없니 파고드는 칼날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기가 넘어질 차례만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많은 풀들은 무언으로 무저항으로 두려움 없이 맞서는 것 같다.
소리없이 대적하는 풀잎에 무자비하게 단단하며 예리한 칼날도 무뎌지고 힘겨워한다.
어쩌면 사람사는 사회도
저렇게 풀잎처럼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때론 칼날같은 어떤 힘에 소리없이 쓰러져 가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벌초는 오후예야 끝났다.
그것도 고모부 내외분이 합세해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서툰 솜씨와의 끝없는 싸움이었다.
길이 막힐까봐 서둘러 귀갓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외로 잘 뚫리는 고속도로...
선글라스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이 아슴아슴 사그라 들 무렵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통행료를 계산하려는 찰라
꽝~꽝~ 연거푸 귀를 찢는 굉음이 들리고 차는 저만큼 튕겨져 나갔다.
순간 어디서 폭발물이 터졌나 하는 착각이 들만큼 어리둥절 했는데
뒤따라온 �차가 속도를 죽이지 못하고 그대로 추돌한 것이다.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차는 엉망이 되었고
온몸은 얻어맞은 것마냥 뻐근하다.
이것이 교통사고구나!!
보험사 직원들이 나오고 일련의 경과조치가 끝나니 남는것은
차는 공장으로 사람은 병원으로 가는일만 남았다.
몇일을 입원하여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를 하다가 어제 퇴원했다.
병원의 진풍경은 차마 다 옮기지 못하겠다.
다만 아직도 자동차보험사와 환자와의 개선점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몇일간 독서로 보낸 시간이 개인적으론 달콤한 휴식(?) 이었다.
하지만 병원은 병원이다.
특유의 냄새와 도심속의 섬처럼 갇히는 공간이다.
물론 화초를 보내주거나 내방을 해주신 많은 분들이 있어 외적인 고독감은 없었다.
그저 심연에서 물감처럼 번지는 혼자만의 숱한 생각들이
쉴세없이 넘나들때 느끼는 그 느낌... 그것들이 힘들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