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미당과 국화축제" 에 대한 小考

귀촌 2008. 11. 3. 18:30

33년전 다녔던 초등학교는

봄이면 사방에 벚꽃이 옥수수 튀밥처럼 피어나고

가을이면 사이사이 코스모스와 갖가지 가을꽃이 만발하던 교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웠던 교정은 이미 폐교되어

다른 용도로 쓰이기 시작한지 오래됐다.

잃어버린 교정과 함께 어린시절의 추억도 먼먼 과거의

강물속으로 잠겨드는 것 같다.

 

이제는 지천명을 눈앞에 둔 나이가 되어

그 어린 시절 추억의 촉수를 더듬거린다.

2년마다 한 번씩 갖기로 했던 동창회가 올해로 두번째였다.

첫회에는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다 이번엔 함께하게 되었다.

모든것이 생각했던 그림은 아니었으나 맘껏 편하게 놀아본 것 같다.

그런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에게 뜻하지 않은 얘길 듣고

참으로 맘이 무거워진다.

 

잘 아시다시피 미당 서정주 시인은 고창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또한 그가 일제강점기때 친일행위를 한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로인해 알게모르게 갈등이 심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역시 친일행위가 밝혀지면서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시인에 대한 좋지않은 감정이 일렁였다.

그러나,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까지 폄하거나

사상적으로 좋지않게 볼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죄는 미워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의

친일행위자체는 몸서리 처지는 문제지만

순수 문학작품까지 한 방향으로 몰아붙인다면 분명

고장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여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로인한 국화축제까지

지장을 받아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었다.

(복잡 미묘한 정치적인 이해관계는 차치하고...)

 

일제강점기때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의 시각으로 본다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거시적으로 본다면 어떨까 싶다.

분명 미당을 문학계의 거목이며 '고창'이라는 지명을 떠올리면 늘 함께

따라붙는 별칭같은 존재다.

각계의 사람들이 끝장토론을 해서라도 뭔가 정리를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어본다.

어떻게 하는 것이 고창을 더욱 빛내고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 말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겠지만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 그냥 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유럽이나 서양에서는 문학 특히 詩가 퇴조하는 경향을 보이고는 있다지만

동양은 그렇지 않다.

함축된 시어 하나하나에 감동과 깊이를 느낄 수 있기에

정서적으로 잘 맞으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아남으리라 여긴다.

하나의 문화 컨텐츠가 얼마나 많은 힘을 발휘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문화의 힘이 곧 권력이자 정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고창'에서 그 힘을 충분히 활용하여 

고창을 알리고 고창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면 작품과 친일행위 자체는 

분명히 구분하여 갈등이 심화되지 않게 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할것이다.

 

서울이라는 객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창'이라는 고향이름만 나와도 귀를 쫑긋 세운다.

하여 고창에서는 무조건 좋은 일만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물론 잘못된 것을 덮고 어물쩍 넘어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충분히 토론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여 상처가 되지않게 하자는 것이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분명 이런 시는 품격높은 문학 작품이다.

친일 행위 그 자체만 놓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다면

고창인 전부에게 상처만 남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어쩌면 내 자신도 기성세대가 되어 좋은게 좋은거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쉽지않은 일이지만 고창인이 자부심을 갖을 수 있는 묘안은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