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특별한 김장김치.

귀촌 2008. 11. 25. 12:15

  초등 입학도 하기전 그러니까 60년대 우리집은 대가족 이었다.

부모님과 할머니,숙부 숙모,삼촌,막네고모 그리고 누나 셋 동생둘

이렇게 대가족이 한집에 살았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두개의 가옥이었으나 식사는 늘 한곳에서 이뤄졌다.

할머니와 아버지 숙부 그리고 장손이 나는 별도의 상에서 식사를 했다.

당시의 가풍은 수직적이었기에 지금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모를 일이다.

밥상의 내용이 조금은 달랐기에 누나들의 불만은

숭늉처럼 늘 따라다녔다.

 

  어느해 겨울 몹시도 추웠는데 막네고모가 내 점퍼를 하나 재봉으로 만들어주었다.

안쪽에 목화솜을 넣고 마름모모양으로 누벼서 만든 것이었는데

얼마나 따뜻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옷은 이를테면 양장학원에서 숙제로 내준 과제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벽촌에서 다큰 처녀가 어떤 학원에 다닌다는 것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할머니와 아버지 몰래 한달정도 다니다 결국 들통이 났고

집안은 발칵 뒤집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자기주장이 강했던 고모는

결국 예정기간에 수료를 했고 과제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내겐 하나밖에 없는 따뜻한 점퍼가  생겼던 것이고...

그해 겨울 뿐만 아니라 몸집이 커져 옷이 맞지 않을때까지 그 옷에대한 나의 애착은 대단했다.

아무도 못만지게 했으며 빨래도 꼭 고모에게만 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각별한 정을 쏟아주셨던 고모는 그 옷을 못입게 되었을 무렵 시집을 가게 되었다.

연지 곤지를 찍고 가마에 올라 신작로 저편으로 사라져 갈때까지 가지말라고 떼를 썼다.

 

  막네 고모는 정읍시내에서 조그만 가게를 겸하며 살고 계시는데 텃밭에 배추를 심어

김장을 했다고 커다란 뭉치를 보내주셨다.

딸이 넷이나 있으니 보내줄 곳도 많을텐데 내게까지 보내신 것이다.

음식솜씨가 좋으신 분이라 김치맛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달착지근한 싱싱한 배추에 알맞게 밴 소금기, 태양초 고춧가루에 잘 삭은 젓갈...

좀처럼 김치에 손이가지 않는 아들녀석도 덥석덥석 집어든다.

김치를 먹을때마다 입안에선 애틋한 고모의 정이 감칠맛 나게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