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하고 사랑하며...

26년만에 누명벗은 '오송회'사건

귀촌 2008. 11. 25. 18:14

【광주=뉴시스】
"지난 20여년, '빨갱이'라는 굴레와 낙인은 천벌(天罰)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25일 오후 2시 광주지법 301호 법정.
1982년 간첩단으로 내몰려 무고한 옥살이를 한 이른바 '오송회(五松會)' 관련자 9명은 사건 조작 26년만인 이날

꿈에도 그리던 무죄가 선고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간첩 취급을 당하며 입 다물고 참아온 세월 때문일까. 관련자들은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믿기지 않는 듯 뜨거운 눈물만 흘릴 뿐 단 한 명도 환호성을 지르지 못했다.

'고정 간첩'의 낙인과 '빨갱이'라는 굴레 속에서 기나긴 세월동안 감시와 냉대를 시달려야 했던 이들은

 재판부가 무죄를 주문하고 법정을 빠져나간 뒤에야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났다"며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감격해했다.

방송국 PD로 일하다 오송회 사건 주범으로 내몰려 강제해직되는 등 모진 고초를 당한 조성용씨(71.동학혁명기념사업회 이사)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와 법의 존엄성, 정의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판결"이라고 말했다.

막노동까지 마다않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채규구씨(56.교사)는

"해고와 생활고, 억울한 옥살이보다도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며 "

자살까지도 생각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흐느꼈다.

지난 92년 작고한 이광웅 선생의 미망인인 김문자씨도 "이제야 한이 풀린 것 같다"며

"하늘에 있는 제 남편도 기뻐서 만세삼창을 부를 것 같다"며 벅찬 마음에 말문을 잇지 못했다.

조씨의 딸 조수현씨(36)는 "'간첩의 딸'이라는 낙인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학비조달도 힘겨웠다"며

"26년, 긴 세월이 지나고 중년의 아빠도 반백이 됐지만 이제나마 억울함이 풀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당시 교사이던 박정석씨 등도 "뒤늦게 나마 누명을 벗고 명예를 되찾게 돼 다행이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먼저 간 이 선생을 생각하니 말문이 막힌다"며 울먹였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전북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 5명이 4.19와 5.18 희생자 추모제를 지낸 데 대해

공안 당국이 용공집단으로 조작한 사건으로, 5명(五)의 교수가 소나무(松) 아래서 모였다는 의미에서 '오송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송창헌기자 goodchang@newsis.com

 


모교의 은사님들이 연루된 사건이라 [그냥... 눈물이 맺힌다.]

특히 국어를 담당하셨던 이광웅 선생님... 칠판에 판서를 하시다가

가끔 뒤돌아보며 농담을 던졌던 그 해맑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당시에도 몸이 약해보이셨기에 모진고문에 그만 희생되셨겠지요.

선생님...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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