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휴대폰.

귀촌 2008. 12. 17. 12:23

 

 

90년대초반 까지 일명 삐삐가 허리에 매달려 다녔다.

녀석은 어찌나 힘이 쎈지 보행중에도 신호만 보내면 사람들은

공중전화기로 쪼르륵 달려갔다.

선이 없는 무선으로 장거리에 있는 사람과 통신을 한다는 것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막강한 힘을 갖은 삐삐를 한순간에 퇴출위기로

몰고간 것이 직접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휴대전화기였다.

무전기만한 전화기를 한손에 들고 길을 걸으면서

얘길 주고받는 모습은 007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현실세계로 걸어나온 모습이었다.

가격또한 만만치 않아 밖으로 드러나는 지위와 富의 상징...

 

만만치 않은 통신비가 지불되지만 지금은 초딩들도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

몇 년만에 오래된 기기를 교체했다.

대리점 주인은 기존 휴대폰에 내장된 정보를 새로운 폰에 고스란히 옮겨주겠다며

미소를 보이더니만 '손님...이 폰이 너무 오래되어 본점으로 보내야 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능이 향상되고 디자인이 세련된 휴대폰이 쏟아져 나오건만

좀처럼 바꿀 생각을 못했다.

물론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었기도 했지만 '선물'로 받은 것이라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외장은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벗겨지고 깨져 볼품없었으나

그 사람의 손길과 미소같은 잔잔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또한 내 자신이 기계치라 새로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도 한몫 했고...

아뭏든 이래저래 오랫동안 품안에 간직한 손때묻은 물건을 놓아버리고 나니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과 새삼스레 선물한 그 사람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어제 오늘은 새로 산 그녀석을 알아가는데 적잖은 시간을 허비하고도 마치

부시맨처럼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한다...^^

문자메시지 보내는 방식은 비슷해서 쉽게 익혔기에

'휴대폰 바꿨어...'라고 보냈다.

시간은 그렇게 그렇게 가고있는 것이다.

색이 바래고, 금이가고, 추억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말이다...

 

흐린 하늘은 하얀 눈발을 기대했는데 빗방울이 든다.

찻잔 속으로 추억 한 조각이 비스켓처럼 빠저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