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에 새겨진 암각화..(스토리텔링)
[고령=뉴시스]
경북 고령군에서 청동기시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가 발견됐다.
고령 대가야박물관(관장 신종환)은 18일 고령 운수면 봉평리 순평마을에서
발견한 암각화 유적을 주변정리와 내용 조사과정을 거쳐 공개했다.
암각화는 운수면사무소가 있는 봉평리에서 대평리로 향하는 순평마을 동편에 형성된
해발 220m 높이의 야산 서편능선 사면의 끝자락에서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하던
박물관 학예연구실팀에 의해 지난 10일 발견됐다.
(사진=고령군 제공)/김재욱기자 jukim@newsis.com < 관련기사 있음 >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새대가 시작된 시기는 대략
BC2000년~600년 경으로 추측한다.
주로 밭농사 위주였으며 초기 철기시대와 겹친다고 볼 수 있다.
저 바위에 새겨진 뜻이 무엇일까?
대체로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의식을 담은 내용이 아닐까 싶지만
정확한 뜻을 알기는 힘들 것 같다.
수천년의 세월을 머금은 터라 희미하게 퇴색한 모습이다.
당시에 어떻게 서로에게 의사전달을 하였는지 모르겠으나
다소 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그러니까 청동기 시대가 맞다면 초기에 아래와 같은 무기를
만들 수 있었던 부족은 요즘으로 말하며 핵무기를 보유한 위력을 지닌셈이다.
군사력이 절대우위를 지배하던 시대에 무기를 만드는 장인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열세살 무렵 어떤 부족장의 아들을 알게 되었고
그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졸라 당시로서는 유일무이한 청동검을 만들게 된다.
칼자루에 두사람을 상징하는 어떤 표식을 세겨넣고 그녀는 그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족장의 셋째 아들이지만 몸이 약해 전쟁터에세 공을 세우기엔 부족했다.
그저 자신의 몸을 보호하여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였다.
여자는 그것을 알기에 심혈을 기울여 칼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식을 치르며 그 칼을 전해주려는 고민을 하다가
거대한 힘의 상징인 바위를 선택했고 그곳에서 의식을 거행하기로 한다.
남자의 둘도 없는 친구와 여자의 아버지는 간단한 제사음식을 준비하여
어느 가을날 추수를 끝내고 산을 올라 바위밑에 이른다.
두 남녀는 하늘에 제를 올리고 하나밖에 없는 청동검을 전달 한다.
여자의 기도는 제발 이 남자가 살아만 돌아오게 해달고 간청했고
남자는 형들 못지 않게 큰 공을 세워 아버지 부족장에게 인정받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그리고 그 뜻을 모아 바위에 서로의 생각을 새겨넣은 것이다.
그해 겨울 전쟁은 치열했다.
그 남자는 비록 몸은 약했으나 그 여자가 전해준 칼 덕분에 많은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연전 연승에 그 남자는 일약 스타가 되었고 차츰 그 여자를 잊기 시작했다.
봄이 되자 내로라 하는 부족들의 여식이 줄을 섰다.
여자는 날마나 남자를 기다렸으나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긴 여자는 아버지를 졸라 다시 그 남자의 칼과 똑같은 칼을 만든다.
그리고 예전에 의식을 치렀던 그 바위밑으로 간다.
기원하는 내용은 단 한가지...
그 남자가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달라는 그것 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언젠가는 알아주리라는 믿음으로
바위에 몇날 몇일동안 세긴 내용이 아래 두번째 흔적이다.
결국 여자는 자신의 남자를 기다리다 그곳에서 청동검과 함께 운명을 달리했고
나중에서야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 남자는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저 바위는 두 남녀의 무덤이 되었고
부장품으로 각각 갖고 있었던 청동검이 함께 묻혔는데
그 검이 널리 알려진 비파형 청동검이다.
ㅎㅎㅎ (스토리 텔링)의 어설픈 흉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