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생각하고 사랑하며...

다시 해를 넘기며.

귀촌 2008. 12. 31. 11:41

여적(餘滴)

                                         다시 해를 넘기며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택근)

 

 

 

  해는 진다. 시간을 뒤적이는 한 해의 끝은 아릿하다.

돌아가 다시 피를 돌게 할 수 없는 추억들. 지나온 시간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쓸쓸하다. 시간은 누가 풀었다 당기는가.

우리네 일상이 포개진 채 굳어지는 세월은 누구에게 바치는 제단인가.

바람만 불어도 우리들 사랑은 흔들렸다. 믿었던 사람들이 내품을,

그리고 세상을 떠나갔다. 지난 한 해를 펼쳐놓으면 남루하다.

하지만 한 해 끝에서는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싶다.

나와 함께 초록별 지구에 사는 사람들, 똑같은 하늘을 이고 지상에 뿌리내린 사람들.

당신의 지난 한 해는 어떠셨는지?

 

  뒤적이고 헤아려보면 지난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북한과는 신뢰를 잃고, 역사는 더듬이를 잃었으며,경제는 방향을 잃었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잃었다. 더듬고 세겨보면 아픈 일들이 많았다.

정초에 국보1호 숭례문이 불에 탓다. 화마에 몸부림 치다가 수도의 한복판에서

불을 먹고 쓰러졌다. 모두 땅을 치고 가슴을 쳤다. 그래서일까.지난 한 해는

탄식과 분노 사이를 오간 날들이 유독 많았다.

 

  그래도 우리는 뭉쳐서 새해로 들어간다.

함께 있기에 외롭지 않다. 창조와 소멸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누군가가 미래인이듯 우리도 누군가의 미래인이다.

어둠이 빛이고 빛이 어둠이다. 우리가 끌고 온 것들-

시험 대신 체험학습을 시키다 쫓겨난 선생님과 그가 흘린 눈물,

국민 건강권을 지켜달라고 마음을 합쳐서 받쳐든 촛불과 그 속의 간절함,

새만금을 찾아와 굶어죽은 노랑부리 저어새와 갯벌의 주검,

어머니보다 더 늙은 고향과 주저앉은 농심, 개발야욕 앞에서 흐느끼는 강물과 산들의 아우성,

시대가 버린 노숙자와 그들의 새우잠, 조류독감의 습격에 미리 죽어야 했던

날개달린 것들과 위험한 봄날-

저들을 묻어야 하지만 차마 어찌 묻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 다시 일어서는 것들이 있다. 다시 빛이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저들의 사연은 마지막 노을로 가만가만 씻을 일이다.

새해에는 다시 이름없는 사람들의 기도가 모여 상서로운 기운으로 퍼질 것이다.

어려울 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나누었다. 새날에는 서로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