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본 한국 민주주의.
막스 베버의 관점에서 본 한국민주주의.
정치란 사회 갈등을 다루는 가장 큰 규모의 조율체계이다.
관련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갈등해결의 노력이 필요하고
또 그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되는 갈등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 갈등은 공익의 관점에서 조율을 필요로 한다. 갈등의 규모나
강도가 클수록 혹은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일수록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에서 공익을 정의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공익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독점적으로 결정하는 고정된 존재나 세력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공익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쟁론의 장이자
갈등하는 이익과 의견이 정치의 영역에서 표출되고 경쟁하고 토론하고
조정하는 과정에 기반을 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으로 정치가
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기대, 불만을 통제해 내지 못하면 갈등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개인의 삶도 불안정해 질 수밖에 없다. 강력범죄의 증가와
출산율의 과도한 하락 등은 그 대표적인 지표들로 정치의 방법을 통해
튼튼해져야 할 개인성과 사회성 사이의 유대가 얼마나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정치는 시장과 달라서, 수요-공급의 함수나 가격메커니즘과
같은 비인격적 조율체계에 의해 작동되지 않는다. 합리적 제도나
이성적 계약을 통해서도 충분히 규율할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정치의
중요한 특징이다. 결국 정치를 정치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인간적 요소’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주목한 대표적인
정치 사회학자를 꼽으라면 단연 막스베버이다. 그는 근대국가에서
정치를 소명이자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출현을 분석하면서 정치에서
개성적이고 인격적인 요소가 갖는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했다.
제도화를 통해 정치의 역할을 규율하거나 어떤 추상적인 원리로
정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정치의 현실가운데
일부만을 말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베버는 정치를 지도자의 역할, 즉 리더십에 대한 문제로
접근했고 그것이 곧 정치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라 보았다.
“현실가능한 것을 관철”할 수 있는 정치가의 능력,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여줄 수 있는”
인간적 매력 없이 정치가 공동체를 위해 좋은 역할을 하긴 어렵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 인간이 선택 할 수 있는 것은 ‘리더십 있는
민주주의냐, 리더십 없는 민주주의냐’의 문제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게 리더십 있는 민주주의란 “정책의 윤리적 내용, 인격의
윤리적 성격에 대한 대중의 확고한 신뢰”가 가능한 체제인 반면,
공동체 전체의 통합을 가능케 할 리더십이 없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파벌의 지배와 이익집단의 과도한 발흥을 불러오고, 의회를 정치부재의
공허한 기구로 전락시키는 체제를 말한다.
이명박 정부에는 정치도, 리더십도 없다. 막스베버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한국정치는 리더십 없는 민주주의, 정치부재의 대통령제의 한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인격의 윤리적 성격’ 에 대해
우리는 확고한 신뢰를 보낼 수 있는가. 뉴타운 개발에서 보듯
‘정부정책의 윤리적 내용’이란 것이 있는가. 국가는 이명박파가 지배하고,
의회는 정치부재의 공허한 기구로 전락했고, 시민사회는 주요 언론들과
소수 재벌 등 거대 사익들의 세상이 된 것은 아닌가. 국가 지도자의
통치가 다수의 공익적 열정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본인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것을 위험시하는 편협성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대통령이 정치의 역할을 무시함에 따라, 그 기능이 가장 위축된 것은
여당이다. 시민의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된 대표기관 임에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여당은 청와대 지시를 이행하는 국회 내 부속기관
이상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제1의 주권기관이라 할 수 있는
입법부에 대한 태도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회는 정부가
원하는 입법안을 속전속결로 통과시켜주는 거수기 역할을 하면 되지
그 이상은 곤란한 존재다. 그러니 야당의 역할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정치대신 대통령이 유별나게 강조하는 것은 법질서 확립이다. 물론
그 의미는 정부 정책에서 소외된 사회 집단들의 항의를 법의 이름으로
초기 단계부터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데 있다.
이번 용산 참사와 정부의 대응은 이를 실증하고 남는다.
미네르바의 구속에서 볼 수 있듯이, 비판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대화와 공존을 원리로 하는 정치의 방법이 아니라
‘두려움의 동원’에 의존하는 치안의 방법을 앞으로도 지속하겠다는
시그널을 확실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법질서의 이름으로 이견이
얼마나 가혹하게 다뤄질 수 있는지는 앞으로도 자주 과시 될 것인 바,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
가진 것 없는 보통의 시민들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지금 시대에, 좋은 리더십을 만나지 못한 것은 큰 불행이다.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