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들 입대 하던 날에...

귀촌 2011. 1. 25. 20:30

아들 입대 하던 날에



밤새 뒤척이다 혼자 일어나 술 한 잔 마시고 새벽녘에야 잠들었다.

아들 녀석에게 밥을 먹여야 되겠기에 찌개를 끓이고 계란부침을 만들었다.

녀석도 잠을 설쳤는지 힘겹게 일어났다.

‘대한의 남아라면 다들 하는 군 생활이니 의연하게 임해야한다’

별 도움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여러 번 되 뇌였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이른 아침을 여는 공기는 매서웠지만 길을 나섰다.

주차장을 벗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챙겨가야 할 것들을 확인했다.

수원 톨게이트를 벗어나자마지 녀석은 잠들어 버린다.

간간히 여기저기서 잘 다녀오라는 전화가 오고 그때마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표정에서 제법 어른스러움이 묻어난다.

입영통지서에는 13시30분까지 입소하라는 내용이었는데 혹시 눈길에 길이

막히지나 않을까 싶어 서두른 것이 너무 일러 11시남짓에 도착하고 말았다.

전주에 거주하는 친구가 마중 나와 이른 점심을 하고 이런저런 얘길 나누는 동안

녀석은 심란한지 바람 쐬겠다며 밖으로 나간다.

개인 사정을 잘 아는 격 없는 친구라 속 깊은 얘기도 많이 나눴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은 흘러 부대 안으로 들어갔더니 연병장 한가득 차가 넘쳤다.

이 백 명이 넘는 장정들과 그 부모들, 여친 남친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 까지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삼 십 여 년 전 내 자신이 입대할 때와 사뭇 다른 점은 입영열차가 없는 점과

부대장의 친절한 안내, 교관들의 자기소개 같은 것들이었다.

입소식이 끝나고 헤어지면서 포옹을 하는데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애써 태연한 척 담담히 건강히 잘 해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데

눈시울마저 뜨거워진다.

조금은 특별한 가정환경 때문에 아비로서 미안함이 가득 차올랐다.

군복을 지급받아 사복을 소포로 보낼 때 무게가 한정되어 있으니 외투는

벗겨가라는 안내에 따라 옷을 벗어 건네기에 녀석의 분신인 양 끌어안고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 주변으로 눈 덮인 산하가 무심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는데

온갖 상념을 밀어내진 못했다.

집에 도착해 텅 빈 아들 녀석 방안을 보자 급기야 애잔함이 극에 달한다.

진학을 포기하고 입대한다 했을 때는 밉기까지 했건만 어째서 이런단 말인가...

그때 마침 손자를 군대 보낸 울음 섞인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끝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