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휴일 심중 산책.
봄비 내리는 휴일 심중 산책.
목을 뒤로 젖혀 한 잔의 술을 넘기는 순간 하늘의 황홀한 별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도심에 살면서 별빛이 있다는 자체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여름날 강원도
어느 민박집 마당 평상에서 내 눈을 기다려 준 무수한 별빛을 되찾은 것이다.
어렸을 때 마당에 모깃불을 지펴놓고 멍석에 누워 할머니께서 부쳐주던 부채바람을
느끼며 잠들기 직전에 만났던 그 별빛 그대로였건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수십 년이 지났어도 그 보석들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 눈을 반겨 주었는데 정작
내 작은 눈은 세파에 퇴색되어 제빛을 잃고 있었기에 온전히 느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같이 촉촉한 봄비 내리는 날엔 토닥토닥 낙숫물 듣는 소리를 따라 그리운 옛 동무들과
마지막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계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어울리지 않게 커피 향에 아롱진다.
별빛같이 맑고 티 없던 아이들의 눈동자와 꾸밈없이 다정다감했던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가슴 안쪽으로 빗물 되어 흘러온다. 이런 감상이 나이 들어가는 현상일까?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이 시리도록 그리워지는 까닭이 고독하다는 징표일까...
오랫동안 애지중지 보살펴 온 란 화분에 꽃대가 올라오더니 어느새 꽃망울을 터뜨렸다.
봄이 와야 년 중 행사로 보여주는 아름다움이기에 그저 대견하고 신묘 할 뿐이다.
고작해야 물기 머금다 내뱉는 모래알 보다 조금 큰 돌 맹이 사이에서 수돗물만 머금으며
살아남기도 버거울 진데 어여쁜 꽃이라니... 그것뿐만 아니라 향기는 또 어떤가?
후각을 자극해 머릿속까지 헹궈 내기에 참으로 과분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저런 생각에 못 마시는 술 한 잔 하는 것이 갓 입대한 아들이 보고 싶은가 보다.
봄비 내리는 이런 날 내 가슴은 수용액을 빨아올리는 리트머스(litmus) 용지마냥
그리움엔 붉은 색이 되고 고독함엔 파란색을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