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생각.

안경(眼鏡)

귀촌 2011. 5. 26. 11:37

안경(眼鏡)


처음 안경을 필요로 했을 때 안과에서 시력을 측정하고 처방을 받아 안경점을 찾았을 때다.

안경사는 처방전대로 렌즈를 골라 얼굴에 맞는 안경을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며

이것저것 권해 주는데 처음 접하는 것이라 어느 것이 좋은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종류만 해도 유리렌즈, 플라스틱렌즈, 초굴절비구면렌즈, 이중초점렌즈,

다초점렌즈, 편광렌즈, 조광렌즈....또 안경 태는 어떤가 금테, 티탄테, NT티탄테,

니켈크롬 합금테, 셀룰로이드테, 아세테이트테, 옵틸테...

너무나 다양한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여, 나름대로 기준을 정한 것이 가볍고 오래 착용할 수 있으며

얼굴에 어울리는 것으로 범위를 좁혀 맞추게 된 것이 지금껏 사용하는

일명 무테안경에 색을 가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선글라스를 비롯해 책을 보는 것, 컴퓨터용,

일할 때 사용하는 다촛점 그리고 예비용까지 여섯 개로 늘어나 있다.

무엇보다 나이 들면서 독서를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두어 시간만 지나도 눈이 피곤하고 정신집중이 여의치 않아 허비하는 시간이 많다.

하지만 안경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만약으로 가정하지만

정말 난감하고 끔찍했을 것 같다. 흔히 눈을 마음의 창이라 일컫는다.

그만큼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의 뜻을 오롯이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소 동떨어진 얘기지만 장자의 외물 편에 나오는 유명한 말을 옮겨본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수단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얻었다면 통발은 잊는다.

올무는 토끼를 잡으려는 수단 이기 때문에 토끼를 얻었다면 올무를 잊는다.

말(言)은 뜻(意)을 잡는 수단이기 때문에 뜻을 얻었다면 말은 잊는다.

나는 어디서 말을 잊은 사람을 얻어서 그와 말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철학자 장자의 소망은 말을 잊은 사람, 즉 내가 건네는 말로 내 생각,

다시 말해 내 의중까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의 언어는 온전히 뜻을 전달하는데 한계를 드러낸다는 대목이다.

하여, 우리는 눈을 통해 마음의 창으로 표현 못할 뜻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을 대변하는 창이 안개처럼 뿌옇다면 사물을 보는 것은 물론이요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무슨 뜻을 전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어가며 육체적인 쇠락은 어쩔 수 없다지만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밝게 보고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기꺼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안경이야 말로 내게 있어서 보물 이 아닐 수 없다.

굴절된 이미지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느니 마른 체형에 안경까지 낀 모습은

까칠하게 보인다느니 하는 말들도 있지만 안경이란 도구는 인간의 문명사를 오늘에

이르게 한 일등공신 이라 하겠다. 처음 안경점에 들어섰을 때 그 많은 다양한 종류와 제질 만큼

안경을 사용하는 사람 또한 각양각색이지만 눈을 편하게 하고 마음의 창을 맑게 하는 역할은

똑같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제 계절은 여름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자외선도 차단해 주고

근사한 포즈도 취할 수 있게 하는 선글라스로 눈을 건강히 보호하여

마음의 창이 상처받지 않는 그런 여름나기가 되길 바래본다.

또한 역설적으로 안경을 착용하지 않아도 맑아 보이는 눈으로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그와 말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