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홀로 보내는 시간들.
귀촌
2012. 2. 19. 01:42
홀로 보내는 시간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김이 서린 뿌연 유리벽 아래로
알몸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조심스럽게 자리를 틀고 앉는 즐거움은
홀로 즐기는 유일한 호사스런 시간이다.
가끔은 로즈메리 향초를 밝혀두거나 아로마 거품을 풀어놓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완전히 잠수시켜 오래 참는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한다.
혈관이 팽창되고 얼굴색은 술을 마신 것처럼 벌게지는 경우도 있는데 개의치 않는다.
피곤한 몸은 아무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부려놓고 정신 또한 무방비 상태로 쭉 늘어뜨린다.
이렇게 사오십 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가량 완전한 혼자만의 공간에서 보내는데
오늘은 떨떠름한 와인 한 잔을 마신 후 소파에 기대고 정말 시체처럼 잠이 들었었나보다.
목이 마르고 답답해 뭔가 시원한 것을 찾는데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있다.
지난 년 말에 아들 녀석이 휴가 나와 먹다 남겨둔 것이 틀림없다.
잼을 바르던 나이프로 몇 번을 파먹는데 맛이 근사하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고독한 절정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라 조금은 초라하지만
살아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나름 의미부여를 해본다.
일에 치이고 때론 사람에게 상처받으며 보내는 시간들도 내 삶의 요소요소를 구성하는
귀한 것들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삭여내려 한다.
하지만, 허망하고 부질없음을 느끼는 순간
팽창했던 고무풍선이 가시에 찔려 흔적 없이 사라지 듯
모든 실체적 현상들이 시야에서,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림을 느낀다.
문틈에 끼였던 손가락이 꼼지락 거릴 때 마다 다시금 통증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