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
성탄절 아침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기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 그 인류애 적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는
성탄의 기쁨을 많은 사람들이 축복 속에 즐기는 날이 오늘 이다.
조용히 그리고 경건하게 라는 수식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풍속으로 변한지 오래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끼리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고 배려하며 나아가 이웃의
아픔을 나누는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것은 기독교를 믿든 그렇지 아니하든 크게 다를 바 없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본성과 도덕적인 양심의 가치를 실천하는데 동서고금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과 재난, 그리고 경쟁의 연속으로 이념적 갈등과
배타적인 투쟁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수 천 수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 그 시대를 살다 간 인간의 희노애락은 어쩌면 비슷했을 것이다.
다만 기술적인 문명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그것을 평가하는 잣대와 기준이 달랐을 뿐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은 존재했을 것이며 행복을 지향하는 순수한 생각은 같았을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고독하고, 풍요로움 속에서도 빈곤의 강도는 더 강하다고 여길까?
이는 한두 가지 요인으로 규정지을 수 없겠으나 분명한 것은 정신적인 황폐화가 가장 심하다는
이유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가 극도로 복잡해지고 그로인해 보편적 가치관의 해체로 도덕관념의 붕괴와 극단의
개인주의가 위험수위에 다다랐기 때문이라 여긴다. 그 증거로 황금만능주의의 팽배를 들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은 개의치 않고 부를 축적할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수용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
그것이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사회 구성원은 서로 화합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탄의 의미는 바로 이런 왜곡되고 파괴된 양심과 철학에 한 줄기 빛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 하루 만이라도 크고 넓은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며 배려하는 그런 날이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