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친구
병주씨가 교통사고로 뇌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어요. 아직 의식은...
친구의 핸드폰 번호로 이렇게 짤막한 문자가 왔었다.
2월25일 아침에 문자를 주고받았었는데 그날 밤에 사고를 당했단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그의 아내 귀옥씨가 전화를 받았다.
대강의 자초지종을 듣는데 앞이 깜깜 하다.
눈앞이 뿌옇게 안개가 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슬이 맺혔다.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허둥대기 일쑤였다.
이미 약속된 일과만 없었다 해도 곧바로 내려갔을 텐데 맘이 답답했다.
전주까지 밟으면 2시간이면 갈수 있겠다 싶어 6시쯤 부랴부랴 나섰지만
황금연휴 나들이 차량이 가로막고 나섰다.
전북대병원 중환자실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면회시간이 지난 뒤였다.
보호자 대기실에 모여 있는 가족들과 얘기만 나누다 되짚어 올라왔는데
형언할 수 없는 슬픔뿐이다.
스무 살에 만났으니 30년도 더된 친구다.
비단 연륜이 쌓여 슬픈 것이 아니다.
나와는 제일 뜻이 잘 통했고, 가치관과 역사관, 상식, 철학, 문학 등에 가장 가깝게
공감 할 수 있는 친구였으며 80년대의 최루탄 눈물을 오롯이 함께 흘려온 사이였기에
그야말로 말이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뜻을 헤아리는 친구중의 친구다.
그런 친구가 의식불명으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니 하늘도 무심하지...
이제 누구와 속엣 얘기를 하며 생각을 나누고 허허로운 웃음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슬픔 이란 단어로는 이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 못하겠다.
그저 때때로 주체 못할 눈물이 흐를 뿐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에 가족과 친지들이 있다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잃는다는 것은
또 다른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임을 절감한다.
친구야~!!
내 눈물로 네게 힘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
이 간절한 마음으로 네가 호전되는 기적을 낳는다면 바랄 것이 무엇이겠느뇨.
네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죽음 같은 고통이거늘
처절한 심정을 무엇으로 달래보랴.
친구야,
사고당일 아침에 문자만 주고받고 통화하지 못한 것이
왜 이렇게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지 모르겠다.
슬프구나...
슬픔 뿐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