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연가.
2008년2월 불에 탄 숭례문을 보며 썻던 글을 다시 올려본다.
이제영
崇禮門 문을 말하기 전에 먼저 조선의 건국을
살펴봐야 한다.
알다시피 조선은 개혁가 정도전의 구상 하에 이성계를 앞세워
창업한 나라다. 때문에 고려 말의 정치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수도인 개경(개성)을 천도하여 서울 이라는 신도시를 만들면서
설계되기 시작한다.
물건 하나를 새로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새 나라를 세우는 것은
말할 나위 없겠지.
정도전이 서울을 구상하면서 임금이 있는 경복궁을 중심으로 4대문의 위치를
정하고 그 이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창건했다.
그러니까 숭례문은 경복궁의 정 남쪽을 지키는 매우 중한 문이다.
당시에는 풍수지리사상이 건축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던 시절이라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미신에 가깝게 볼지 몰라도 그 의미를 찬찬히 살펴보면
경복궁의 안전을 위해 관악산의 불(火)기운을 숭례문이 막아서는 위치로 본 것이다.
당시 불교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유교의 도덕성을 부각시키려는 정도전의 구상에는
禮를 숭상하게 하여 왕권과 신권을 분리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남대문의 이름을 崇禮 로 한 것은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음을 맞던 그해 숭례문은 완성되었다.
자신을 만들어주고 이름을 붙여준 사람을 보내고 그는 육백십년을 서있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보내며 중간 중간 보수도 하고 영양제(?)도 맞았다.
일제 때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담장마저 잃었을 때도 잘 버텨 서 있었건만
무엇이 속병을 앓게 했던가...
어제 티비화면 으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데 마치 그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토해내는 입김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설마 했다.
최첨단 소방차가 도착해있고 내로라하는 소방관들이 가있는데....
여느 때처럼 기상과 동시에 뉴스를 듣는데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외마디 탄식도 차마 입 밖으로 흘리지 못하겠다.
가슴이 꽉 막히고 숨통이 조여 오며 밤새 가쁨 숨을 몰아쉬었을 육백년의 恨이
머릿속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렸다.
늘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어야 할 당당한 풍모가 시커먼 잿더미로
무너져 내린 모습... 처참한 몰골이라니...
자리를 잡아주고 이름을 지어주며 제 할 일을 당부했던 정도전이 한 여름 밤
시퍼런 칼날에 이슬처럼 쓰러져 갔듯이 그도 하룻밤 새 자취를 감추었구나...
오늘은,
숭례문을 기리는 마음로
역사의 그 긴 뒤안길을 걸어가 보고 싶다...
** 이렇게 적고 있던 그 숭례문이 오늘부로 다시 웅장한 모습 그대로 우리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