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시
길상호
빨랫줄의 명태는
배를 활짝 열어둔 채
아직 가시 사이에 박혀있는 허기마저
말려내고 있었네
꾸덕꾸덕해진 눈동자를
바람이 쌀쌀한 혀로 핥고 갈 때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네
꼬리지느러미에서 자라난 고드름
맥박처럼 똑.똑.똑.
굳은 몸을 떠나가고 있었네
마루 위의 누런 고양이
한 나절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켰네
빨랫줄을 올려다보는 동안
고양이는 촉촉한 눈동자만 남았네
허기를 버린 눈과 허기진 눈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참 비린 한낮이었네
- 《한국동서문학》 2014년 봄호
시를 읽은 날은 좀 다른 하루가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것을 꼭 행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무언가에 따뜻한 시선을 줄 수는 있겠다. 햇빛과 바람이 오늘은 다르고 모퉁이의 풀꽃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한다.
하루를 여러 마음으로 떠돌다 착 달라붙는 시를 만나는 날은 참 운이 좋은 거다. 시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도 이렇게 다른 모양과 향기가 있는 꽃밭에 들어앉으면 딱딱한 마음이 풀어질 거다. 아, 깊이 살피는, 응시. 가만히 선반에 올려놓고 보고 싶은 시가 아닌가.
출처 : 금강하구사람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
메모 : 자꾸만 되돌아 보게 하기에 안방에 모셔왔습니다...
'살면서 생각하고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넝쿨장미가 한창이다. (0) | 2016.05.26 |
---|---|
한계령을 위한 연가 (0) | 2015.12.03 |
도올 김용옥 교수의 세월호참사에 관한 칼럼. (0) | 2014.05.03 |
거시적인 안목으로 국토종합계획을 보면 삶에 도움이 된다. (0) | 2014.02.04 |
이구아수폭포 (0) | 2013.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