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지 병상에서의 하루.

귀촌 2008. 11. 10. 10:42

 

"서해안 지방의 짙은 안개로 항공기 이착륙에 이상이 있을 수 있으니

출발 하시기 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날씨 예보를 하는 아나운서 얘기를 들으며 서둘러 옷을 챙겨입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디서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를만큼 안개는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것 같다.

한통의 전화를 받고 출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쪽에서 무슨수를 써서라도 한시바삐 가야하는 목적지가 생긴 것이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좋은 일에는 그리 급하게 서둘지 않지만

좋지않은 일에는 불길한 예감이 한박자 먼저 서둘러 독려하기 마련이다.

 

몇일 전 생신때 뵙고 왔는데 불과 4~5일 사이에 병원에 입원이라니...

혼자는 거동도 못할만큼 탈진되어 간신히 택시로 이송되었단다.

작년이맘때 경운기 사고로 명치부분 뼈가 바스러지고 갈비뼈 6개가 금가는

중대 고비가 있었던터라 그로인해 병원래왕이 잦아졌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안개는 운전자들의 시야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며 득의양양

제 힘을 자랑하는 것 같다.

시야는 좁혀져 바로 앞차 꽁무니에 고정된다.

머릿속은 어느새 과거 중학교 시절 폭설이 내린 시골집을 그리고 있다.

 

전깃불이 들어온지 몇년 안되는 시절이라 도로가 포장되고

폭설에 제설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상상으로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마 1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다.

2~3일 전부터 배가아파 할머니께서 아랫배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그때만 좋아질 뿐

아주 기분나쁘게 통증이 반복되곤 하였다.

몇일간 눈발이 간간히 날리다 그날은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눈보라가 몰아치며

세찬 눈발이 모든것을 삼켜버릴 듯 덤벼들었다.

십릿길을 걸어 약을 사러 가기엔 엄두가 나질 않았기에

민간요법으로 통증을 다스려 볼려고 꿀물을 미지근하게 마신다음

따뜻한 구들방에 배를 깔고 업드려 있는 것이 전부였다.

어지간히 참을성이 있었기에 이까짓 것 쯤이야 하면서 견디고 있었다.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는사이 눈은 나리고 나려 온 천지를

숨도 못쉴 만큼 짓누르고 있었다.

 

급기야 새벽녘에 온방을 떼굴떼굴 구르며 소릴 지르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업고 뛰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르게

병원에 다다랗었고 등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맹장이 터저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안심해도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후~ 한숨을 내 쉬었단다.

그때의 아버지 등은 단단하고 견고했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온 몸을 내맡긴 아버지의 등은 따스했고

고개를 모로돌려 밀착된 귀는 청진기마냥 소리를 흡수하고 있었다.

한발 한발 바삐 내딛는 발소리와 함께 쿵쾅쿵쾅 심장뛰는 소리가 빨려들어왔다.

자식이 어찌될까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안타까움과 평상시 표현하지 않았던 애틋한 사랑이

한꺼번에 온몸으로 전류처럼 흘러들어왔다.

그렇게 그렇게 그날의 병상일기를 또렷이 기억한다.

 

군산을 지날때까지 안개는 조금 얇아 졌지만 여전히 백내장이 낀것처럼 뿌옇다.

부안 TG를 빠져나가 정읍아산병원에 도착하니 정오를 막 넘긴 시간이다.

얼굴은 검버섯이 여기저기 피어있고 잔주름,희끗희끗 눈발이 내려앉은 머리카락,

눈은 충혈되고, 손은 마른나뭇가지처럼 뻐석하다.

세월속에 단단하고 아늑했던 등은 여위고 굽어있다.

"일하다 말고 뭣하러 왔냐"

손을 잡는데 눈앞에 뭔가가 어른거리며 데구르르...이슬방울이 맺혔다 떨어진다.

재학시절 당신 아들이 '빨갱이'들과 데모를 한다며

면사무소 지서장이 엄포를 놓으며 다그치자 부리나케 학장실로 달려와 짓던 표정...

軍입대를 하던날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들어와 간신히 손목시계를 건네받으며

애잔히 바라보시던 그 눈빛, 그 표정이다.

그러나 그때의 눈에는 광체가 번득였는데 지금은 깊게깊게 가라앉은 호수같은 눈이다.

수많은 세월이 모두 빠져들어 깊이깊이 침잠한 눈...

 

혈액검사,초음파,내시경,조직검사,여기저기 촬영...결과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어떤 세균에 의한 감염같으니 시간이 지나면 회복하실 것이란다.

밤새 업치락 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몇일 있으면 수능치르는 손자놈,

동생들, 누나들 얘기로 간간히 많은 얘길 나눴다.

아니, 혼자 얘기하고 혼자 답하는 동안 아버님은 내 안에 들어와 마음으로 통했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뜻을 읽고 헤아린다.

 

겨우 하룻밤 세웠는데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점심으로 나온 죽을 드시기에 나름대로 만족(?)감을 갖고 올라왔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 또 한 번 고개를 떨구게 하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추수한 쌀 한포대를 보내셨는데 그 안에 금일봉이 들어있다.

소리나는대로 눌러쓴 글씨는

'시험날 상민이 춥지안케 외투하나 사이피그라. 자근 것이지만 할애비 성의잉게...'

 

이땅의 아들들이

이땅의 아버지들을

어떻게...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완쾌되시어 퇴원하면 함께 산책하러 내려갈께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별한 김장김치.  (0) 2008.11.25
수능 시험날 아침.  (0) 2008.11.13
"미당과 국화축제" 에 대한 小考  (0) 2008.11.03
초등 동창회를 앞두고...  (0) 2008.10.30
"운명" 교향곡  (0) 2008.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