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생각.

그녀의 희망.

귀촌 2009. 1. 8. 12:45

아침 8시 3호선 지하철 녹번역에서 콩나물 시루같은 객실에

그녀는 몸을 구겨 넣는다.

한 달 가량 매일 반복하다보니 이젠 많이 익숙해 졌다.

그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 어떤 사람은 신문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들고 열심히 오락을 한다.

제법 큰 그녀의 손가방엔 읽을만한 책을 넣고 다니지만

출근 시간에는 좀처럼 엄두를 못낸다.

출 퇴근 하는 것이 전쟁에 비유될 만큼 치열하다.

 

사십 중반을 넘긴 그녀는 나이에 비해 이른바 동안(童顔)이다.

얼굴 뿐만 아니라 몸매도 뱃살 하나 없으며 청바지라도 입으면

뒷모습은 이십대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스무살이 된 딸 옷을 때론 스스럼 없이 입고 나서기도 한다.

또한 이것 저것 맞춰서 코디 하는 실력은 수준급이다.

 

결혼 21년째 그녀는 소위 중산층이라 일컬을 만큼 삶의 기반은 탄탄했다.

남편이 괜찮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지난 아이멤에프시절 구조조정 선봉에서

자진 퇴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남편은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라도 해온 양 금새 변신을 시작했다.

퇴직금에 대출을 좀 받고 한식당을 시작 하겠다고 양제역 근처 점포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마침 불고기 집이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싸게 내놓은 집을 한달만에 접수하게 되었고

내부 수리하는데 약 한달을 허비한 후 한식집을 오픈하게 되었다.

남편은 저돌적으로 밀어붙였다.

타고난 건강과 적극성으로 요리를 배우고 운영계획을 세우고 벤치마킹을 통해

의외로 짧은 기간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요술방이를 휘두르는 것처럼 손님은 하루가 다르게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렇게 8년 이란 세월이 눈 깜빡 할 새에 흘렀다.

적잖은 자산을 모았다.

그러나 삶에는 늘 함정이 도사리고 있나보다.

눈코 뜰새 없이 바삐 돌아가는 일과에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단골 손님중에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톡톡한 재미를 본 사람들이 몇명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힘든 장사 맡겨두고 자본이 축적되었으면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보란 얘기였다.

물론 그 사람들은 자신의 일처럼 적극 도와주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지하철역 근처 재개발이 예상되는 곳에 허름한 집을 사고 팔고 하는 과정에서

몇 달을 노력해야 손에 쥘 수 있는 돈을 단 한번에 거머쥐는 행운이 따라줬다.

남편은 귀뜀해준 사람들에게 술도 사고 등산도 같이하며 가끔 골프장에도 함께 갔다.

이렇게 일년가량이 꿈같이 지나갔다.

욕심이 과하면 화(禍)를 부른다고 했던가...

작년 초에 급기야 대형사고를 치게 되었다.

직접 건축을 하여 분양을 하면 일거에 많은 재산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그동안 모아둔 부동산과 주식 등을 몽땅 처분하고 그것도 모자라 담보대출까지 받아

땅을 사고 수십채의 빌라를 짓기 시작했다.

계산대로라면 수백억의 자산가가 되는 시발점에 선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늘 남편의 입장을 대변해 주진 않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태평양건너 서울까지 점령하며

분양을 시켜 현금화로 이어져야 할 부동산은 꿈쩍도 않았다.

불어나는 이자에 늘어만 가는 술(酒)...

맡겨두었던 음식점마저 처분하여 이자 갚는데 없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남편은 전 재산을 다 날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러한 현실을 전혀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하는 일마다 얼마나 잘 되어 왔던가...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빚독촉은 그녀의 정신세계를 송두리째 황폐화 시키고 말았다.

남편이 벌려놓은 일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되어

또 무슨 문제가 튀어 나올지 가늠하기조차 어렵게 되어있다.

몇 일 동안 마치 넋이 나간 사람마냥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는

강한 정신력으로 하나 하나 추스리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의 명의로 되어있는 살던집을 급급매로 처분하여 일부 빚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강북 끄트머리 산동네에 전세집을 구했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자신의 뒷머리를

있는 힘껏 후려치는 자각증세를 느끼며 이제는 가족을 위해 스스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고향은 춘향이로 유명한 정절(貞節)의 고향 '남원'이다.

성은 윤(尹)씨 이다.

160cm가 채 되지 않는 키에 호리호리 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목소리는 맑다.

그녀는 요리에 전혀 취미가 없었으며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일을 가끔 거들다보니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을 만한 정도는 된다.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리 찾아봐도 이것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하여, 정식으로 한정식(韓定食) 요리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정식에 이용되는 반찬의 종류는 약 1,500여 종에 달하고, 전체 음식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반찬은 구이, 전, 볶음, 지짐, 편육, 조림, 생채, 숙채, 튀각, 찜, 전골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되어

영양과 맛, 색채감, 온도 등 여러 면에서 조화를 이루어 주식을 보조할 뿐 아니라

계절과 지역,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복잡 미묘한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기 위해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전혀 모르는 풋네기는 아니라 할지라도 배우면 배울 수록 머리가 아프다.

하루 3시간 강의를 받고 나머지는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처음 몇일은 숨도 못쉴만큼 피곤하고 괴로웠다.

그러나 차츰 적응이 되면서 지금은 콩나물 지하절 타는 요령을 터득한 만큼이나 익숙해 지고 있다.

이제 그녀의 꿈은 제대로 된 음식점을 차려

예전에 자주 듣던 '윤여사님~' 이란 호칭을 되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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