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동차와의 재회.

귀촌 2009. 4. 16. 15:47

녀석이 내게 오던 날.



부서지고 깨어지고

주인을 위해 던진 몸은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 그것 이었다.

경찰에서 제시하는 사진을 보았을 때

마음은 무겁고 괴로웠다.

그 안에 내 손때 묻은 물건들은 어찌 되었을까...

사방으로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까...

33일만의 재회는 기쁨보다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

오히려 착찹 함이 짓눌러 왔다.

기술이 좋아 겉모습은 성형이 잘 되어 깔끔했다.

이것저것 제짝이 아닌 다른 부속이 들어와 있어선지

표정은 우울하다.

잘 견뎠냐는 표현으로 툭툭 몇 군데 건드려 봐도

무표정이다.

“짜식~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 구나”

배고프겠다. 우선 먹을 것부터 먹고 신나게 달려보자...


조금씩 잦아드는 빗방울 속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아니, 내닫는 건 마음뿐이고 산보하듯 조심스러웠다.

핸들을 어루만지며 라이트도 켜보았다.

엔진의 심장박동소리는 좀 커진 것 같다.

반가움에 느낌을 크게 받아선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정상이다.

집에 도착해 뒤 트렁크를 열자 작은 종이박스가 있다.

염려했던 소품들이 깨진 유리 알갱이들과 뒤섞여 있었다.

먼지를 털어내는데 마치 사고 당일 날 병원에서 내 머리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유리가루를 털어내던 때와 같은 느낌이다.


폐차를 시켰어도 될 만한 금액이 수리비로 지급되었다는

명세서가 사무실 팩스로 날아들었다.

사람 사는 것도 무생물의 물건과 함께하면 그 물건에 자신의 혼이 심어진다.

어찌 보면 돈으로 그냥 새것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에 덧칠되어 있는 감정까지 새것이 될 수는 없다.


비가 개고 화창한 날이니 녀석을 깔끔히 씻겨봐야겠다.

더불어 상처 난 마음도 곱게 다림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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