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는 것들을 위한 단상.
세모(歲暮)엔 자전과 공전하는 지구의 바퀴 밑으로
세상사 모든 것이 소멸되는 느낌이다.
소멸이 있어야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사물이 생겨나지만
없어지고 잊혀 진다는 것은 애처로운 일이다.
수 십 억 명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귀한 것이다.
다만, 어떤 것은 필요한 것이고 또 다른 것은 불필요한 것으로 구분되어 질 뿐
개개인이 자신에게 소용없다고 멸할 권리까진 주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세밑에 무엇을 취하고 또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떤 것을 가치 있게 보느냐의 문제로 남는다.
유난히 추운 올해의 세밑은 하얀 눈까지 내려 다사다난 했던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기에 분위기 짱(?)이다.
창밖으로 조금씩 흩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벌써 몇 잔째 커피를 찾고 있다.
왠지 그냥 이렇게 찻잔이라도 매만지며 내리는 눈을 봐줘야 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메스컴 에서 매년 이맘때 10대 뉴스를 선정한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뉴스거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몇 가지 영상처럼 맺히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그 첫 번째요
또 좋아 할 것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 두 번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이 아니겠는가...
살아있는 동안 자연현상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생,멸 한다.
사랑도 그렇고 슬픔과 이별 그리고 축하와 행복감 등이 세월의 빨래 줄에
순서대로 내걸려 펄럭인다.
어떤 것은 애써 외면해도 기어이 눈앞으로 다가와 존재가치를 알리고
또 어떤 것은 붙잡으려 해도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아니 기억에서 지워진다.
예전에는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사람이나 사물을 슬프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그들을 기억해 내지 못하는 자신의 두뇌가 마냥 애처롭게 보인다.
세월의 바퀴 밑에 스스로 깔려든 느낌이 한없이 슬프게 한다.
누군가로부터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전에 스스로 상대방을 기억해 주려고 노력 하는 것
그것이 잊히는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우리는 살면서 결코 잊지 않아야 될 중요한 것은 까맣게 잊고
반드시 잊고 살아야 할 좁쌀 같은 기억은 오래 간직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하얀 눈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리는 것이 아닐까...
바람을 타고 나려나려 쌓이는 눈송이 위로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 조각들이 덧쌓이고
그 사람의 눈동자에 담겨있는 따사로운 정이 향기로 흐른다.
잊혀 진 기억의 저편 어디에서 꼬물꼬물 되살아난 그 사랑
눈 녹듯 금 새 또 사라진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들만큼이나 스스로의 식어가는 심장이 더욱
슬프게 와 닿는 시간
모든 잊히는 것들을 위해 가슴시린 눈빛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