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생각.

외로운 영혼.

귀촌 2010. 1. 3. 20:00

그는 새로 이사온 집이 작지만 맘에 든다.

남향이며 적당한 층에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다.

예전엔 길가옆이며 버스가 회차해 나가는 지점이라 각종소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오토바이의 무례하고도 방자한 굉음이 때론 머리털까지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사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무려 8개월을 망설이며 이리재고 저리쟀다.

그러나 수능시험이 끝나면 무조건 옮기기로 하고 예정된 날이되자 즉각 실행에 옮기고 말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미뤄질게 뻔하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부부간의 갈등을 안고 살아야만 했다.

요는 현 재도상의 헛점을 이용해 나랏돈을 이용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선뜻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들어갈 돈이 많은데다 딱히 모아놓은 재산도 없어 아내가 시작하려는 사업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좋은 방법이 있다며 속삭인 내용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이혼을 하면 사업자금을 국가로부터 빌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모자가정 내지는 혼자사는 가정으로 만들면 그에따른 창업자금 대출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혼을 하냐... 라며 한마디로 딱 잘라 거절을 했는데

날이갈수록 그의 아내는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그까짓 서류상의 이혼이 뭐가 대수라고 쫌스럽게 그렇게 망설이냐... 까이껏 인생 뭐 별거 있어?

글구 지금 아니면 뭘 해보려 해도 그땐 나이가 들어 할수도 없다는 다그침에 그만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그래, 만약 딴맘이 있다면 형식이 뭐 중요하겠어.

함께 살아도 남남처럼 산다면 그게 무슨의미며 떨어져 있어도 부부로 살면 그게 더 낫지...

이렇게 생각이 들자 그는 승낙한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개월이란 시간이 눈 깜빡할 새에 흘러가 버리고 지금은 졸지에 이혼남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개업을 한지 몇일 되지 않아 늘 가게에서 살고 있다.

옆에 조그만한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며 집엔 도통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화를 하면 받지도 않고 어쩌다 받더라도 지극히 사무적으로 몇마디 주고받고 만다.

그의 아내는 개업한 장소도 명확히 알려주지 않고 또 누군가와 동업을 한다는데 그 또한 함구한 채 따지지좀 말란다.

그는 지금 너무 외롭다.

다큰 자식은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간다고 나가버리고 덩그러니 혼자남아 밥을 먹으려니 목이 메인다.

냉장고에 뭔가 이것저것 들어있는데 도통 어떻게 해먹는 것인지 알 수 없고 또한 모든게 귀찮다.

배고픈 현기증을 느끼며 손쉽게 접근한 것이 라면끓이는 것이었다.

냉동실에 떡살이 있어 언젠가 분식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떡라면 생각이 나기에 함께 넣고 끓이기로 했다.

그러나  냄비에 물도 적었고 떡살은 바닥에 달라붙어 미끈거리며 김치는 덜익어 씁쓰름 계란은 너무익어 푸석...

식탁에 올려놓은 냄비가 푹푹 한숨을 쉬는 것 같다.

 

그는 오늘도 복분자주 한잔을 유리컵에 따라 홀짝 홀짝 마셔본다.

원래 술을 못마셔 어떤 술이든 한잔만 마셔도 얼굴은 홍당무가 되는 체질이다.

그런데도 이젠 커피마시듯 습관처럼 술을 마신다.

어젯밤부터 하루종일 혼자인 그는 문득 외롭다는 느낌을 갖는다.

정녕 혼자있는 외로움이란게 이런 것인가 보구나...

이렇게 하루 이틀 이어지면 죽을지도 몰라... 아니, 외로움에 의해 살해당할지 모를 일이야...ㅎㅎ

술기운이 독약처럼 온몸에 벌겋게 퍼진다.

거실 문을 열자 찬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을 옥죄어온다.

발코니 문까지 열자 찬 기운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강하다.

잠옷차림이라 더욱 춥게 느껴지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난간에 손을 짚는다.

저 아래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는 자동차가 애처롭게 보인다.

추위를 이겨내려고 부들부들 떠는 것 같다.

그는 주차장에 웅크리고 있는 자동차가 한파의 공격에 떨고 있는 모습이

자신이 외로움에 떠는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로 그순간 떨리는 손이 난간을 넘어 허공에 매달린다.

비로소 술기운이 확 날아가며 정신이 번쩍 드는데 몸은 자꾸 어디론가 곤두박질 치는 것 같다.

짧은 순간의 긴 여운이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아내가 수화기 너머로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까이껏 인생 별거 있어?" 라는 말이 산산히 부서진다.

추구하던 모든 것이 정지된 석고상이 된다.

그의 영혼은 끝없이 펼쳐진 파란 잔디위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가 빨리 돌아와  하며 큰 소리로 불러줬으면 좋으련만 그는 마냥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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