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밑에서
찜질방 온도마냥 푹푹 찌던 날씨가 바람이 일렁일 때 마다 잔뜩 머금고 온 스멀스멀한 습기를
살갗 여기저기에 다닥다닥 붙여놓더니 이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검은색 아스팔트위로 여기 저기 얼룩무늬를 만들더니 금 새 흠뻑 젖어 낮은 곳을 향해 흘러내린다.
마땅히 나설 곳도 없어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에겐 그저 반가운 손님 같은 비다.
일기예보 에서는 소멸된 태풍의 끝자락에서 유입된 비가 중부지방에 최고 100mm까지 내린다더니
빗줄기는 점점 약해져 이내 얌전한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때때로 미지근한 사랑보다 격정적인 사랑을 기대했던 젊은 날의 한 시절마냥
좀 더 세차게 아파트 창문을 흔들며 내려주길 은근히 기대했나보다.
그렇게 낮 시간이 가고 깊은 밤이 되자 늦은 귀가를 서두른 차들이 간간히 생각보다 큰소리로
크르렁 크르렁 웅얼거리며 자리를 잡고 바퀴를 가지런히 정렬하면 불빛을 삼켜 잠자리에 든다.
그곳은 비교적 크게 계획된 주거지라 녹지와 도로, 공원, 상업지역 등이 편리하게 갖춰져
늦은 여름밤 창문을 열면 바람과 풀벌레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다만, 그것들이 가는 모기장 구멍을 통과해 들어오느라 잘게 쪼개진 느낌을 받곤 한다.
그는 암흑 같은 실직의 시간을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문을 열수 있을지 깊은 고뇌가
줄기차게 이어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독서를 하거나 인터넷으로 바둑을 두고 이른 아침
공원을 산책 할 때도 목에 가시가 박힌 양 신경이 쓰이고 따끔거린다.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도 그의 건강상태와 나이를 감안하면 갈 곳이 없다.
막상 경력을 기술하려니 정말 보잘 것 없어 이걸 어떻게 내밀지 망설여 질정도로 자신감을 잃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이력서를 몇 번씩 수정하고 다듬어 고르고 골라 매일 몇 곳씩 이력서를 제출한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니 중요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직은 생활비가 남아있어 그런대로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겨울 유리창에 덧씌워지는 성애마냥 식구들의 눈치가 한 겹 두 겹 온 몸을
휘감아 오는 것 같아 때때로 청소와 빨래 설거지 같은 것도 자진해서 하고 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것은 식구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것이라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 여기면서도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는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싶어 아침이 되자 무작정 집밖으로 나와 동네 길을 지나
공원으로 나가는데 비가 내린 직후라 풀잎과 나뭇잎에는 물방울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어
한껏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다.
문득 이 아름다운 광경도 해가 뜨면 금 새 지워지고 말텐데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그 자신이 세상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저 물방울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한숨으로 되돌아온다.
삶 전체가 우주의 테두리 안에서 본다면 저 영롱한 물방울이 맺혔다 떨어지는 것과 흡사 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마치 개똥철학에서 하나의 알맹이를 건저 올려 주머니에 넣고 있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잠시나마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공통점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생겼다 소멸하고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고.... 어쩌면
거대한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인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바퀴 밑에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쉬다가도 반 바퀴 구르면 맨 위에서 내려 보는 형국이
되지만 찰나의 순간에 내리막이 되고 또 어느새 올라가기도 하니 말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지금이 맨 바닥에 깔려 겨우 숨만 쉬고 있지만 바퀴는 굴러 머지않아 다시
위로 올라가리라는 믿음을 가져 본다. (물론 경우에 따라 바퀴가 구르지 않고 정지해
있는 시간이 길 수도 있지만.)
그에게 시원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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