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독대

귀촌 2008. 9. 23. 12:29

 

 

 옛날 내가 살던 고향집 뒷켠에 이런 장독대가 있었다.

커다란 돌로 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잡석과 흙으로 다진뒤

넓적한 돌을 깔고 사이사이에 작은 돌맹이로 채워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빗물이 오면 곧바로 스며들어 고일틈이 없었고

햇볕과 바람이 잘 통했으며 주위엔 감나무와 대나무가 있었다.

단 밑으로는 지금 보이는 모습처럼 작은 화단이 조성되었다.

채송화,봉숭아, 민들래,분꽃 같이 키가 작고 앙증 맞은 꽃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봉숭아는 누나들의 손톱물들이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매년 필수종으로 관리되었다.

 

꼬맹이 시절 막네고모 시집가던 날 

온 집안에 일가친척들과 동네사람들이 북적였다.

마당엔 채알(천막)이 넓게 펼쳐지고 멍석위로 초례청(?)이 설치되었다.

음식은 전전날부터 돼지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연신 붙여대는 부침개와 산적을 뜨거울 때 먹는 재미는 일품이었다.

그러나 한 두개 얻어먹고나면 눈치가보여 먹질 못했다.

그런데 뒤란 장독대로 큰누나가 접시가득 부침개를 가져왔다.

호호불며 손으로 찢어 순식간에 먹었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이며 연지곤지를 찍은 새색시 막네고모가 보인다. 

 

장독대 주변으로 몇 발작씩 움직이면 닿을만한 거리에 겨울이면 김장김치가 묻히곤 했다.

김용택님의 詩 '그여자네 집' 에 나오는 김장독 묻는 광경이 그려지는 장독대...

사람들의 삶은 그렇게 계절의 리듬을타고 자연과 어우러져 살았는데

현대인은 자연을 느끼기위해 일하는 것처럼 작정하고 나서야 되는게 현실이다.

 

늦더위로 가을이 더디게 오고 있지만

홀로 시립해 있는 저 해바라기처럼 일년생 식물은 물기를 잃을테고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을 징검다리마냥 슬쩍 지나치며 겨울로 흐를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눈내리는 날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에

장독대위에 소복하게 쌓이는 눈을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그여자네 집' 처럼 김장독 묻는 모습은 어쩌면 시대극으로나 보게될 것 같다.

 

장독대를 찍은 한장의 사진에

어린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이 아련히 배어난다.

 

Mus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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