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場)날.(market day)

귀촌 2011. 10. 9. 01:37

 

장(場)날.(market day)

 

 

 

 

어린 시절 시골에는 5일이나 7일 만에 장이 섰다.

풍성한 인심에 왁자지껄한 장터의 모습은 정말 활기차고 흥겨웠다.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장에 따라가면 사탕이나 떡, 튀밥,

잔치국수 등을 먹을 수 있어 얼마나 좋아했던지 모른다.

십리 혹은 시오리 길도 마다않고 따라 나섰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물론 가끔 아버지께서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 강아지 같은 가축을

내다 팔 때는 그 서운함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아 밥맛을 잃은 적도 있었지만,

장날은 왠지 기다려지는 가슴 설렘을 불러왔다.

특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을 앞둔 장날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게는 옷이나 운동화 책가방 같은 좀 덩치 큰 선물이 따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라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고 큰 자본이 형성되며 이런 작고 아름다운 유통 과정은

그 명맥을 찾기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정감어린 잔잔한 감동과 설렘, 그리고 사람 사는 인정미마저 앗아가지 않았나 싶다.

 

최근 거주하는 이곳 아파트 단지 내에 토요일 마다 소규모 장이 선다.

천막을 치고 좌판을 벌이고 솥을 걸어 옥수수를 삶기도 한다.

각종 야채며 과일, 생선, 화분, 순댓국, 파전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온다.

물론 가까이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볼 수 없는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가슴이 뛰지 않으며 흥겨움도 일지 않는다.

식사시간이 되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배달된 음식을 신문지위에 놓고 먹는 모습에서

헤아릴 수 없는 쓸쓸함만 묻어난다.

나이 들어 내 가슴이 메마른 탓일까?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삭막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두워지며 판을 거둬 차에 실은 장사꾼들은 떠나고 주차장엔 밖에 나갔던 차들은 하나씩 들어와

일 열 횡대로 쭉 늘어서 졸기 시작한다.

 

깊은 밤 홀로 제법 썰렁한 밤공기를 비집고 이울어 가는 달빛을 보니

되새김질 한 추억 한 토막에 그리운 바람구멍만 숭숭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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