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기
2박3일 짧은 가족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 일상이 너무 힘들어 잠시 바람 좀 쐬어 보고자 하여 계획하게 되었다. 수 년 만에 갖게 된 일정이라 정해진 날의 기상상황이 어찌 되든 예약하기로 했던 것이다. 다행이 하늘도 도와주어 쾌청하고 바람까지 선선했다.
오랜만에 비행기에 앉아 창밖을 보자 마치 처음처럼 신기하다. 저 아래 도시의 풍경과 산과 들의 풍경이 어찌 그리 오밀조밀 하던지. 인간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무늬를 쉼 없이 그려놓아 그것이 자연과 하나가 되고 그 무늬 속에서 하나의 점으로 또는 또 하나의 풍경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워 보였다.
비행을 할 때 마다 느끼는 감정이 그저 신기하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대충 알고 있다 하더라도 커다란 쇠붙이가 엔진과 날개가 있다하여 지구의 강력한 중력을 밀어내며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날수 있다는 것이 매번 신기롭기만 하다. 하여 돌이켜보면 인간의 능력이 새삼 경이롭다는 것이다. 권기태의 소설 “중력”에 나오는 우주인 이야기를 조금은 더 실감 있게 느끼는 계기가 바로 이렇게 비행기를 타는 때다.
서해바다를 건너는 동안 우측 창밖만 바라보느라 고개근육이 뻐근할 정도였다.
솜털구름 한 가운데는 눈부신 빛이 엉겨 붙어 있는 모양이고 때때로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모습들이 스쳐지나 갔다. 제주 하늘에 도착하니 육지 상공과 비교되는 풍경이다. 펑퍼즘한 언덕과 검은 돌을 밀어내고 일궈놓은 밭들이 모자이크처럼 보이고 산과 바다가 캔버스에 그려놓은 한 폭의 수채화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제주도 땅에 발을 딛고 렌트카를 구해 도로에 나서니 머리를 단정하게 퍼머한 모습으로 후박나무와 먼나무 들이 도열하여 미소로 맞아주는데 이 역시 서울도심 거리의 풍경과 사뭇 달라 이국적이다.
점심을 먹어야 하기에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계획한 것은 당일 우도에 들어가기로 되어있어 성산 항 쪽으로 길을 잡아 월정리에 들어갔다. 아직 해수욕을 할 시기가 아니라 모래사장은 한가로워 군데군데 사진을 찍거나 밀려오는 파도를 희롱하며 장난치는 장면들이 눈에 띈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잔잔하여, 가늘고 여린 파도가 작은 혀로 날름거리 듯 해안을 핥고 비릿한 특유의 바다내음은 시선 끝에 매달린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다.
평소보다 이른 점심이었기에 간단히 때우고 신선한 바람 맛이 가미된 커피 한 잔으로 좋은 분위기를 배안에 채웠다. 바다를 볼 때 마다 새삼스럽게 인간이 살수 있는 아니, 생명의 근원이 되어주는 저 많은 물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것도 바다에만 고여 있지 않고 대기의 순환에 의해 온 지구상을 흩뿌리며 살아있는 지구의 모습을 구현해 내지 않던가. 가이아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지구는 살아있는 생명체 그 자체라고 생각된다.
성산 항으로 가는 길에 우회전하여 조금 들어가니 천년의 숲 비자림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아담한 커피점이 있어 들어갔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편안하고 커피향이 좋아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크기의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개인적으로 바둑을 좋아하여 비자판이 좋다는 얘기만 들었지 그렇게 거대한 비자나무를 마주하긴 처음이다. 그것도 한 두 그루가 아니고 숲을 이루고 있으니 수 백 년 아니, 천년가까이 무더기로 살아남아 숲을 이루고 있다는 자체가 신비로울 뿐이었다. 은행나무처럼 암. 수나무가 구분되어 있으며 열매로 기름을 짜거나 볶아 술안주로도 쓰인다고 한다. 나뭇잎은 주목과 비슷하다. 잎 모양이 非字 모양으로 되어있어 비자나무로 불리게 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하나의 說인것 같다. 빽빽한 숲속에 산책을 할 수 있게 오솔길을 만들어 놓아 걷기 좋은 길이며 어느 숲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향과 하나같이 아름드리크기의 모양에 눈길 머물지 않는 나무가 없다. 거목으로 자라라는 동안 숱한 고비를 넘겨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숲(林)이라 불리기 충분하게 대단위면적을 차지하고 있다니 그 자체로 신비감을 자아낸다. 수 백 년 이상 살아남은 비결중 하나는 제주도 라는 특수 환경이 한 몫 한 것 아닐까 싶다. 비자나무 특성이 수분이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니 제주도만한 보금자리도 드물 것이다.
가히 비자림(林)으로 손색없는 이 숲이 언제까지라도 잘 보존되어 제주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머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천천히 숲속을 걷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성산 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에 들어가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 항구로 차를 몰았다.
우도에 드나드는 배는 자주 있었다. 큰 배가 아니라 자동차는 후진하여 실어야 했는데 짐을 가득 실은 트럭도 함께 탔다. 늦은 오후라 우리 가족을 포함해도 20여명 정도만 선착했으니 배안은 썰렁할 만큼 한적했고 2층 갑판위로 올라가자 온 사방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포말을 남기며 질주하니 성산항은 점점 멀어지고 다시 꿈을 꾸는 듯 바람 속에 내 생각은 잠드는 것 같았다.
이 섬에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 내심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낯설다는 느낌보다 정감있고 소박하다는 생각이다. 역시 검은 돌들이 빙 둘러앉아 밭의 울타리가 되고 그 안에서 무언가 곡식들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들이 정겹다. 주로 땅콩을 심는다는데 그래서인지 우도 땅콩 파는 간판들이 보였다. 백사(白沙) 가득한 작은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 석양 해는 하루일과를 정리하는 양 화려하게 바닷물에 반사되고 있었다. 유난히 흰 모래가 가득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역시 모래알이 마치 밀가루를 몽글몽글 반죽해 뿌려놓은 것 같다. 신발을 벗고 검은 바위틈 사이를 걸어 들어가 모양이 색다른 조개껍데기를 주워 집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더니 웃으며 잘 간직하겠단다.
예약한 펜션은 이름도 거창한 백악관 이었는데 복층구조로 되어있는 깔끔한 모양이며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여 맘에 들었다. 여장을 풀고 어둑해 지는 해변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복잡한 생각들이 다소나마 바닷바람에 헹궈지는 느낌이다.
제주도의 돌들은 어딜 가나 누군가 검은 물감을 입혀 놓은 것처럼 하나같이 검은색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도 막상 들어보면 작은 것도 무게감이 상당하다. 이 모든 것이 과거에 엄청난 폭발이 있었던 화산섬 이라는 반증이리라.
어둠이 짙어지자 검은 돌과 검은 바다가 정말 오래된 연인마냥 너무 잘 어울린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와 돌들을 어루만지고 밀려가길 수없이 반복한다. 똑같은 행동을 무한 반복 하는 것 같지만 거의 대부분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와 닿는 것이다. 우리네 삶도 저 파도와 닮아 있다. 하루하루 유한 반복 하지만 매일매일 똑같지 않고 조금씩 다르게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늦은 새벽에 방안까지 전달되는 파도소리는 마치 꿈속에서 몽롱한 다른 세계와 교감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먼 우주에서 누군가가 바닷물을 악기삼아 연주하는 신비한 소리로 들려온다.
오전에 검멀레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동굴구경을 하자고 하여 도착 하였으나 전날 보트 사고가 나서 오늘은 영업하지 않는단다. 할 수 없이 멀리서 깎아지른 바위섬 주변만 바라보는데 이 또한 장관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자연의 조화다.
동굴구경은 하지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험을 하게 될줄은 그때까지 하지 못했다. 검멀레 절벽위를 올라 보기위해 우회하여 둘레 길을 찾아들어 갔는데 초입에 말을 타는 곳이 있었다. 실재 말을타고 움직여본 경험이 없어 호기심이 작동했다. 나와 아들은 동의했지만 아내는 겁이 난다며 거절했으나 말 주인의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셋이 함께 말 등에 올랐다. 말을 타고 산보가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안정적이다. 등에 말안장을 올려놓고 타지만 생물이 움직이는 근육과 뼈의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양 다리를 박차에 끼우고 허벅지를 말 몸통에 밀착시키면 갈비뼈의 움직임이 장단지에 직접적으로 전달되며 그 느낌이 살아있어 인간이 만든 탈것들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바람처럼 달려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욕심이었다. 산보하는 속도 내지는 빠른 걸음정도로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낯선 경험은 참으로 소중하단 생각을 새삼스레 해보는데 인간과 말의 인연까지 거슬러 올라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최초 인간이 말을 길들여 탈것으로 이용하게 되면서 인간의 문명은 참으로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걷거나 뛰는 문화에서 말등에 올라 이동시간을 단축하던 최초의 사람들을 상상해 봤다. 현대인이 고속철을 경험하는 것만큼 신기하고 참신했으리라 여긴다.
최초로 말을 기승용으로 활용한 시기는 초기 청동기 시대인 아파시에보문화(B.C. 30~25세기) 시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등자(말안장)는 기원전 4세기경 북방 유목민족들이 처음 개발했다고 전해지며, 중국에서는 서기 2~3세기부터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럽에는 8세기경에야 등자가 전해졌는데, 이 등자는 중세 유럽에서 기사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말을 타고 그 말의 걸음걸이대로 움직여 보고 말 등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좀 특별하다는 것을 한 번쯤 맛 볼만 하다 하겠다.
그 외 우도에서 아들의 선택으로 맛본 수제버거와 흑돼지 한치 주물럭도 색다른 먹거리였다. 다시 제주도로 향하는 배를 탈 때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느낄 만큼 관광객이 많이 탔다. 그중에서도 단연 중국 여행객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만큼 제주도에 중국인이 많이 오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천지연폭포로 이동하는 과정에 제주허브동산 이라는 영농법인에 들렀는데 잘 꾸며진 아름다운 공원이며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발 맛사지도 하고 향기에 관한 공부도 할 수 있어 이색적이면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장소다. 각종 꽃들과 조각 그리고 명소를 디자인한 사람의 철학이 담겨있는 설계가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하게하며, 만나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러나 아쉽게 그분은 현재 한국에 없고 캐나다에 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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