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생각.

무제.

귀촌 2010. 5. 29. 12:29

병원 예약시간이 09시30분이었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렀건만 간신히 5분전에 도착했다.

월요일 아침이면 서울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차들로 넘쳐나고

올림픽도로와 성수대교를 건너는 차들도 신경이 날카롭게 서있다.

한양대병원 류마티스 내과에 드나들기 시작한 세월도 강산이

한 바퀴 반은 변했음직한 만만찮은 기간이다.

‘검사결과 염증수치가 좀 증가했네요.’

......................!

‘혹시 감기 같은 거 앓은 적 있어요?’

‘네~ 한 열흘 전 술 한 잔 하고 엉겁결에 거실바닥에서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띵 하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 괜한 사설을 늘어놓았구나 싶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는 편이니 일 년이면 네다섯 번 대면한다.

‘심하진 않으니 똑같은 약으로 처방할게요.’

‘15주 후에 다시 오세요... 오시기 일주일전에 검사 받으시고요.’

경우에 따라 심전도와 골밀도, 안과까지 검사하는 경우가 있지만

거의 똑같은 절차에 비슷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진찰을 끝낸다.

이제는 일상화 되어있을 법 하건만 병원을 다녀오는 날엔

우울한 기분이 끈적거리는 땀방울처럼 달라붙는다.


세상은 자신의 생각과는 영 딴판으로 돌아가는데 스스로 적응하지

못하고 변방에서 우물쭈물 나아갈 방향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천안함 사건과 지방선거로 몸살을 앓는 세태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들고 하는 일도 변변치 않아 맘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고창문학카페에 문학기행 공지가 떴다.

충남보령시 (소설가 김종광 출생지)라고...

사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아 낯익을 리 만무하다.

여건이 되면 꼭 참석하고 싶은데 작가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

대충 묻어간다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단편집 <경찰서여, 안녕>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71년생이니까 나보다 십년 늦게 태어나신 분이다.

몇 편 읽다보니 정말 매력적이다. 소설과 현실을 구분 짓기 어려울 만큼

리얼리즘이 배어있고 무엇보다 작가의 건강한 의식에 통통 튀는 긴장감이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어떻게 이렇게 씨줄과 날줄로 잘 엮어 내는지

부럽다는 내색을 숨길 수 없다.

이문구 소설의 시대상황이 21세기로 흘러들어와 옷을 바꿔 입고

태어난 것일까...낯익은 어투와 조금은 뺀질거리는(?)표현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숨겨진 날카로운 생각들이 퍽퍽 뭔가를 쓰러뜨린다.

아직 얘기 한 마디 나눠보지 못했지만 작가는 참으로 맛깔스런

성품을 지녔을 것으로 느껴진다.

상대적으로 늘 현실의 벽에 부딪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긴 그림자를 응시하는데 선거유세차량의 요란한 로고송이

정적을 깨뜨리고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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