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성곽
이제영
수 백 년 동안 눈 뜨고 있는
성곽城郭에 검버섯이 피어나고
늙음에 대한 한恨과
아픈 기억 감추려는 양
담쟁이넝쿨 고운 단풍으로 화장化粧을 하고 있다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경계
맨몸으로 버티고 서야하는 외로움
모진 풍상과 따스한 볕
구분 없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세월이 흐르면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 따위는
접은 지 오래다
시절이 바뀌어 제 할 일 잃고
관광객의 눈치나 살피는 처지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죽인
현장의 산 증인이건만
그 기억마저 희미하다
제 몸보다 더 무거운 침묵으로 버티고
앞으로도 앓는 소리 내지 않을 것이며
알알이 껴안아 몸 비비며 그렇게 또
수 백 년을 눈 뜨고 있으리라
눈 뜨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