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자작시.

남한산성 성곽

귀촌 2019. 10. 21. 19:36



남한산성 성곽

                  이제영

 

수 백 년 동안 눈 뜨고 있는

성곽城郭에 검버섯이 피어나고

늙음에 대한 한恨과

아픈 기억 감추려는 양

담쟁이넝쿨 고운 단풍으로 화장化粧을 하고 있다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경계

맨몸으로 버티고 서야하는 외로움

모진 풍상과 따스한 볕

구분 없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세월이 흐르면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 따위는

접은 지 오래다

시절이 바뀌어 제 할 일 잃고

관광객의 눈치나 살피는 처지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죽인

현장의 산 증인이건만

그 기억마저 희미하다

 

제 몸보다 더 무거운 침묵으로 버티고

앞으로도 앓는 소리 내지 않을 것이며

알알이 껴안아 몸 비비며 그렇게 또

수 백 년을 눈 뜨고 있으리라

 

눈 뜨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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